<현동칼럼> 책은 몇 권이나 필요하나
집이 무너질 정도로 ‘책모으기’에 미친 사람들은 ‘3가지 재미’를 말한다. ‘보는 재미, 읽는 재미, 만지는 재미’이다. 읽는 재미 말고도 그저 책장이나 넘기며 책을 어루만지는 재미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책쟁이’들의 경지이고, 내겐 쌓여있는 책이 ‘남기지 말고 먹어야할 밥상’처럼 보인다. 다 읽은 책이라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헤엄치는 법’을 읽었는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그건 진짜 읽은 것일까. 사실은 읽어야한다는 의무감보다 실천이 없는 읽기가 더 버겁다. 소화할 능력은 없는데 억지로 밥을 밀어 넣어야하는 심정일까. 버릴 책을 고르다가 이덕무의 글을 만났다. 젊은 시절 가난에 찌들었던 李德懋(1741~1793)는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불리울 만큼 책에 미친 사람이었다. “내 집에 좋은 건 <孟子> 일곱 편뿐, 오랜 굶주림에 견딜 길 없어 2백전에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소. 이 말을 들은 친구 柳得恭은 <左氏傳>을 팔아 술을 받아주었소,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나를 먹여주고, 左氏가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에 다르겠소” 웃어넘길 수 없는 처절한 지경인데도 웃음이 나온다. ‘孟子가 밥을 짓고 左氏가 술을 따라주다니’ 초월한 여유, 해학(諧謔)의 극치이다. 책이 돈처럼 귀하던 시절, 이덕무의 책은 밥을 주었다. 책이 휴지처럼 수십 수백 만 권씩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책은 사람의 몸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옷이나 밥, 집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의식주만 있다고 다 되는가, 정신이 필요로 하는 것도 많다. 오백년 전 선비 金安國은 <송재잡설松齋雜說>에서 ‘사는데 꼭 필요한 10가지 물건’을 꼽았다. 책이 제일 먼저 오른다. “책 한 시렁, 거문고, 친구, 신 한 켤레, 베개, 창문, 마루, 화로, 지팡이, 나귀 한 마리.” 의식주 걱정을 벗어난 다음단계이다. 김안국은 ‘한 시렁의 책’을 말했다. 나는 한 시렁 보다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은 얼마나 될까. 책을 펼친다. 이순신, 노자, 에디슨, 톨스토이, 워렌버핏---, 성인군자, 영웅, 재벌, 천재,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다 나온다. 그들이 가르키는 길, 그들이 걸어간 길들이 생생히 그려진다. “책속에 길이 있다” 말 그대로 책을 열면 길이 열린다. 그런다고 그냥 그 찬란한 영광의 길을 쳐다보며 감탄하기만 하면 되나. 길은 걸어야 길이다. 보기만 하고 실제로 걷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길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왜 내려 오려면서 힘들게 산에 올라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왜 똥으로 싸려면서 밥은 자주 먹느냐!” 답변이 직설적이다. ‘밥이야 안 먹으면 당장 몸을 못 움직이니 먹어야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 이 반박에도 답이 있다.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의 기氣를 받기위해서다. 등산을 하면 다음 일주일간 활기차게 일할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기를 받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책에서 기를 받아야한다. 어떻게 산에 오르는 것이 기를 받는 오름일까. 마찬가지로 책속의 길은 어떻게 걸어야 책의 기를 받을 수 있을까. 길은 목적지로 가기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와야 한다. 떠난 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수단도 되어야한다. 다른 사람도 따라서 되짚어 갔다 올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길은 돌아올 수 없다. 책길은 여러 차례 되돌아 올 수도 있지만 인생길은 단 한번밖에 갈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되짚어 갈 수 있는 책의 길, 나는 몇 권의 길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을까.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얼마나 많은 책길을 체험하든지, 내 자신이 쓰는 인생이란 책은 단 한 권뿐이다. 책을 펴놓고 자문해본다. ‘나에게 필요한 책은 몇 권인가’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mtong@mtong.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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