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함칼럼>미술관, 경제 파워의 중심에 서다

2009. 03.23(월) 11:21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 가운데 대부분을 문화기자로 근무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미술기자이기에 가능했던 해외미술관 순례와 유명 아트페어 취재여행은 지금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 해외 유명 미술관들은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다. 미술관만 순례하는 여행상품이 만들어질 정도다. 때문에 유명미술관들은 다소 어수선하고 무질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센터를 개설하거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는 등 미술관 본연의 역할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나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한 적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과거의 역사(驛舍)를 개조한 미술관으로 인상주의 그림의 보고라는 평가 받고 있다. 때문에 하루에도 수 천 명의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밀레의 ‘만종’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관광객들이 붐비는 가운데서도 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진지하게 그리면서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좋아했던 소재나 색깔까지를 설명해 주었고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으면서 부지런히 스케치를 하거나 색칠을 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또 한사람의 피카소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또 한 번은 가까운 일본 가고시마 시립미술관에서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우선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미술관 입구에 세계적인 조각가 로뎅의 대표작 ‘지옥문’이 버티고 서 있는 데다 전시관 한 칸은 아예 로뎅관으로 이름 붙여져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데 놀랐다. 그 다음은 미술관 안에서 열심히 취미생활을 하는 시민들의 진지하고 행복한 표정이 발길을 붙잡았다. 바로 미술관이 시민들의 사랑방이었다.
가고시마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화산섬인 사쿠라지마가 우뚝 솟아 있는 관광지다. 지금도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활화산이 있는 데다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어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가고시마에는 시립미술관 말고도 이 고장 출신의 일본화 거장 구로다 세이키 등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브스키 미술관도 유명하다.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대표적인 미술관은 일본 후쿠오카시 미술관이 아닌가 싶다. 도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60,70년대 벚꽃이 필 무렵의 광주사직공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놀랍거니와 시민들을 사랑을 계속 받기 우해 많은 특별예산을 편성해 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측의 노력은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달리나 샤갈 엔디워홀 등 거장들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부르는 것이다.
미술관이 도시의 운명을 바꾼 곳은 스페인 빌바오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퇴락해가던 빌바오는 새 생명을 얻었다. 80년대 말 도시가 공동화(空洞化)에 따라 죽음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을 때 그들은 산업부흥 대신 문화를 선택해 성공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1천억원이 넘는 미술관을 건립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케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은 개관 3년만에 투자비의 4배이상을 건졌고 미술관 하나가 바스크 총생산의 0.5%, 노동인구의 0.5%인 9,000여명의 고용창출효과를 거뒀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미술관이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 경제파워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광주는 지금 문화수도 건설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국책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건물은 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무엇을 채울까, 무엇을 보여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미국 메사츄세츠 공대 마크 슈스터 교수가 지적한 대로 세계적인 문화발전소는 모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시아문화전당 내 미술관의 기능은 미미하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가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될 때부터 매년 세계적인 걸작들을 하나씩 모으자고 주장해왔다. 독일 카셀역 앞에 ‘하늘을 나는 남자’라는 작품이 서 있듯 광주시내 곳곳에 세계적인 조형물들을 하나씩 모아가면 머지않아 자연스런 문화도시가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지금도 전무하다.
흔히들 좋은 미술품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전쟁을 해서 빼앗는 것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돈을 주고 사오거나 빌려오는 것이다. 빼앗거나 살 수가 없다면 빌려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 미술관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둘 필요가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경우도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준공이후의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우선 미술관 학예사들을 보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적 걸작전 시리즈를 마련한다면 아시아의 문화 중심으로 우뚝 설 것이다.


문화통 대표 발행인 지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