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폭 서양화 병풍 ‘光州市街 全圖’발굴
가로 9.24m, 세로 1m 크기에 광주시가지 모습 파노라마로 펼쳐져
동파 최호춘 선생 작품... 첫 장에는 나주 출신 허연 시인의 ‘찬가’
| 2024. 06.13(목) 08: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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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역의 숨은 문화자산을 발굴해온 문화通은 제보자의 안내로 병풍을 입수해 관계 전문가들과 각종 자료를 찾아내 이 그림이 언제, 어떻게 해서 그려졌고 누가 그렸는지, 그 작가와 찬가를 쓴 허연 선생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에 대해 내밀하게 취재를 시작했다.
우선 이 그림은 사직공원이나 양림동 쪽에서 무등산을 바라보기 시작해 그 시야를 산수동 두암동으로 옮겨가면서 광주시가지의 모습을 그렸다. 병풍의 제목도 ‘광주시가전도(光州市街全圖)이다. 무등산이나 조선대학교 등은 사실적 이미지가 담겨 있으나 시가지 풍경은 스케치 형식을 취했다. 다만 그가 목회자였기 때문인지 양림 교회나 천주교회 등의 풍경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 그림을 살펴본 원로 서양화가 김준호 선생은 “그림 그리는 솜씨가 대단한 분으로 여겨지며 이를 회화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나 스토리를 더 깊이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동파(東波) 최호춘(崔浩春)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고장 출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광주시가지에 대한 깊은 인상이 스며 있고 첫장에 새겨진 ‘찬가(讚歌)’라는 시도 이고장 나주 영산포 출신인 허연 시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전업화가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다. 다만 2014년 3월 8일자 중앙일보 독자투고에 나오는 글에 따르면 그는 재미 교포이고 LA로 건너가 페인트 가게와 표구사를 운영하다가 노년에 목회자로 활동했으며 성화(聖킻)도 많이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2014년 타계.
미국에서 태양표구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재덕씨의 글에 따르면 동파 최호춘은 자신의 호를 따서 ‘동파표구사’를 운영했고 정재덕은 그 밑에서 표구를 배워 나중에 태양표구사를 차린 것으로 되어 있다. 정씨는 최호춘에 대해 “미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존경하는 친구”라고 기억하면서 3.1 독립선언서를 직접 써서 미국에 기증한 일도 있다고 써 있다.
문화通이 최근 LA지역 교민회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호춘은 ‘새생명교회’와 관련이 있으며 70년대 중반 LA로 이민해 노년에 목회활동을 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뉴스를 접하고 광주와 무등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그림을 그리고 무등산을 노래한 허 연 시인의 시를 첫 장에 쓴 것으로 보인다. 최호춘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허연 선생의 시 ‘찬가’는 국한문 혼용체로 궁서의 서법에도 상당히 밝은 편이다.
찬가(讚歌)
언제 보아도 德스럽고 인자하신 어머니 같은 無等山/ 침묵하면서도 오직 忍苦와 包容으로써 靑靑 푸른 뜻을 간직한 채/ 不義 앞에 屈하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만 웅어림을 삼키는 山- 光州는 그 품 안에서 새벽을 맞이하여 大鵬처럼 큰 나래를 펴고 躍動하는 것이다/ 하루의 日課가 끝나면 따스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주고 어리석은 손이라도 잡아주는 곳/ 銀杏나무도 프라타나스도 太古의 노래와 浪漫의 휘파람으로 일렁이는 거리와 거리/어디선가 南道의 흥겨운 가락이 울려오고 墨香이 머리맡에서 그윽히 감도는 고장이다/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는 詩의 꽃밭에서도 白馬탄 將軍의 채찍과 獅子같은 絶叫를 들을 수 있는 가슴과 가슴들이 情을 나누며 살아가거니… /光州는 이제 다시 발돋움하여 눈부신 太陽을 향해 기지개를 켜리라 /글 香邨 許 演 / 그림 東波 崔浩春
한편 허연 시인은 나주 영산포 출신으로 호남신문 편집국장, 광주 문화방송국장, 광주시립민속박물관장, 예총 전남지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에 천료된 뒤 1953년 처녀시집 ‘향나무’ 출간을 시작으로 동시집 ‘새싹’ 시조집 ‘불망비’ 시집 ‘얼굴’‘산란초’ ‘백수가 다 되어도’ ‘그냥 그렇게 흘러갔으면’ ‘내 혼만은 정녕코’ ‘종장’ 등 많은 작품집을 남겼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나서 이듬해인 1981년 자녀들이 있는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지난 2017년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해는 이듬해 고향인 영산포 양천허씨 선산으로 돌아와 이곳에 안장되었으며 가족과 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비 건립식을 가진 바 있다. 시비에는 ‘나의 나무’와 ‘꽃이 되라시면’이라는 두편이 친필로 새겨져 있다.
향촌 허연 선생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아주 많이 광주와 광주 친구들을 그리워했고 훗날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허연 선생의 자녀들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호춘 목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그림이 어떻게 해서 미국에서 광주로 옮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최종 소유자가 자동차정비 관련 사업가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본 문화계 인사들은 “광주시립미술관이나 시립 역사민속박물관 등에서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通 취재팀>
박원지 기자 mhtong@hanmail.net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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