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祐含칼럼> 栗亭別을 아십니까?

2022. 09.21(수) 09:07

지난 초여름 함평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 하나가 열렸다. ‘함평천지’로 시작하여 ‘삼천리 제일경은 호남이 제일이라. 거드렁거리며 놀아보세’로 끝나는 439자의 호남가 노래비가 세워진 것이다.

호남가가 세상에 니온지 200여 년 만에 이뤄진 뜻깊은 일이었다. 지역의 한 원로는 ‘문화적 사건’이라고 격려했다. 이 일은 문화통을 발간하는 사단법인 광주문화발전소가 제안하고 함평향우회와 호남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이뤄낸 것이다. 광주문화발전소는 지난해 광주의 노래 ‘무조건 광주로’를 작사·제작하고 광주 출신 트롯여왕 김연자 가수에 의뢰해 세상에 내보냈다. 이 또한 관의 도움이 없이 순수하게 문화애호가들의 모금으로 이뤄낸 일이었다.

이 세상에는 일은 하지 않고 크게 입만 벌리는 빅마우스(Big Mouth)들이 너무 많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만 쏟아놓는 ‘어리석은 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우리 주위를 찾아보면 우리 시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시대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하나쯤 남겨두고 떠나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필자는 우리 지역에서 호남가 노래비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율정벌(栗亭別)’ 시비 하나쯤 세웠으면 하는 것이다.

‘율정’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이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가기 위해 천리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이다. 나주읍 북쪽 5리 지점이다. 두 형제는 이곳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강진과 흑산도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할 판이었다. 그날이 1801년 11월 21일이다.

한때는 율정이 영산포 삼거리 어디쯤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밤남정(밤나무 정자거리)으로 밝혀졌다. 동신대학교에서 삼도 쪽으로 가는 길목 700여m 지점에 있다. 큰 도로가 뚫리면서 작은 로타리가 생기고 큼직한 표지판도 붙어 찾기가 쉽다.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운 정약용이 새벽녘에 쓴 시가 ‘율정별’이다.

茅店曉燈靑欲滅 (모점효등청욕멸) / 起視明星慘將別 (기시명성참장별)
脈脈붙붙兩無言 (맥맥묵묵양무언) / ��欲轉喉成嗚咽 (강욕전후성오인)
초가 주막 새벽 등불 꺼지려는데 / 일어나 샛별 보니, 슬프다 이제는 이별이네요
두 눈만 말똥말똥 두 사람 말을 잃어 / 애써 목청 다듬지만 울음이 터지네요

모두 22행으로 이뤄진 시의 첫 구절이다.
22일 아침, 공교롭게도 22행의 시를 품고 다산은 강진으로, 손암은 흑산도로 나뉘었는데 그것이 영별(永別)이 될 줄이야. 손암은 흑산도로 들어가 16년 되던 해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 다시 율정을 지나 고향으로 갔고 다산은 2년 뒤에 그 길을 지나면서 형님 생각에 통곡했던 슬픈 이야기의 장소다. 당시 다산은 형님이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그 길을 지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산의 글에는 ‘율정별’ 말고도 가끔 율정이 등장한다.

얼마 전 다산 연구가 박석무(朴錫武) 선생이 ‘율정별 시비라도 세우자’라는 기고문을 지역신문에 실었다. 필자에게 수십 년 전 ‘다산기행’이란 책을 통해 율정별을 일러주었고 호남가 노래비 건립을 끝내고 ‘율정별 시비’ 건립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너무나 반가운 글이었다.

선생의 글처럼 율정 그 자리에 멋진 시비가 세워지고 그곳에 작은 초옥의 주막이라도 하나 생겨나면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는 관광객들이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관광 명소가 되지 않겠는가. 함평처럼, 나주시나 나주향우회가 나설만한 일이다.

<문화통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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