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디지털 세상, ’빅 브라더‘는 누구입니까? 2021. 10.22(금) 09:14 |   | 노트북 컴퓨터 화면이 갑자기 흐려졌다. 껐다 다시 켜도 바탕화면조차 제대로 뜨지 않는다. 부팅하는데만 몇 분씩이나 걸리던 며칠 전부터 낌새가 안 좋았다. A/S 센터를 찾았다. 5년 전에는 데이터 저장용량이 적다고 노트북을 새 걸로 바꾸라고 했다. 이번엔 처리 속도가 늦어져 SSD(디지털정보 저장장치)를 바꿔야 한다는 진단이다. 사실 아무리 고량진미를 쌓아놓았더라도, 제때제때 먹고 소화해 내지 못하면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노트북 컴퓨터는 도서관이자 세계를 향한 창구다. 노트북이 먹통이 되면 세계를 바라보는 창도 닫힌다. 새 SSD를 끼우자, 클릭 한 번에 바탕화면이 환하게 떠오른다. 그동안 버벅거리던 인터넷 서점도 번개처럼 올라온다. 하드웨어 단계를 높인 김에 소프트웨어도 ’ᄒᆞᆫ글 2020‘ 최신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무슨 단어든지 터치 한 번 하면 명쾌한 해석이 나온다. 수십 개 사전이 여의봉처럼 손안에 들어있는 느낌이다.
노트북만 있으면 카페 한구석에 앉아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글도 쓰는 시대다. 디지털 노마드가 신인류로 추앙받는 시대, 디지털 세상을 실감한다. 디지털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세상은 왜 유토피아가 되지 못할까? 의문이 생긴다. ‘정보는 힘이자 돈’이다. 디지털 세상에선 누구나 정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은 ‘부의 양극화, 권력의 편중화, 불공평 불공정 사회’가 더 심화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를 그린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 열풍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83개국에서 모두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가 불법인 중국에서도 1억 명 이상이 접속했다. 덕분에 ‘달고나 과자’ 만들기, 한국어 배우기까지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K-pop, BTS,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한류문화는 오히려 외국에서 붐이 일어 한국으로 밀려온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류가 외국에서 더 인기인 이유는 무언가. 디지털 컨텐츠가 유튜브, SNS,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단박에 세계에 퍼지는 디지털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징어 게임>은 190개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영국 BBC는 <오징어게임> 인기비결을 ’불평등한 사회와 다르게 페어플레이에 바탕을 둔 대안세계를 보여준 때문’으로 풀이했다. 2년 전 아카데미상을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도 불평등사회를 고발한 작품이다.
호평만 있는 건 아니다. 귀담아들어야 할 비평도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17일 ’오징어 게임은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잔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서양사회가 150여 년에 걸쳐 이룩한 선진문명을 40여 년 만에 빨리 이룩해낸 반작용으로 불평등사회, 양극화도 잔혹할 만큼 빨리 깊어졌다. 부와 권력 편중화에 대한 분노도 그만큼 강하다. 그 분노가 디스토피아 드라마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을까.
한국은 디지털 강국이다. 인터넷 망, 인프라 설치, 인터넷 접속시간, 사용률 등 모두 세계 최고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등 콘텐츠 창작에서도 최상위다. 디지털 강국이 현실에서도 대안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1945년 조지오웰은 <동물농장>에서 ‘계급사회를 무너뜨리면 모두가 평등을 누리는 유토피아 세상이 온다’고 외치던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자 권력에 중독되어 오히려 디스토피아 세상을 펼치다 몰락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문화의 힘은 다양성이다. 한쪽으로만 쏠리는, 편향된 이념이나 신념은 오히려 세계를 불평등하게 만든다. <동물농장>이야기는 50년 후 소련 멸망이라는 현실로 증명되었다. 또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세계석학 유발하라리는 ‘코로나 이후 빅 브라더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빅 브라더는 빅 데이터다. 빅 데이터를 여의봉처럼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고량진미 같은 정보를 고르게 먹고 근육으로, 신체활동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김종남<언론인>
김종남 위원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