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바다가 주는 시간’ 받아 보았나?

2020. 11.30(월) 11:06

마라도에 갔었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11km 바닷길을 달려 다다른 우리나라 최남단 섬이다. ‘大韓民國最南端’이라 새겨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자연석 옆에 서서 남쪽 끝 바다를 바라본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짙푸른 수평선이 둥그렇게 둘러싼다. 바다는 모든 생명의 시원이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아가 열 달 동안 잠겨 사는 양수(羊水)는 바닷물과 성분이 같다고 하지 않는가. 끝없는 수평선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점인지 깨우친다.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노동이 필요하다.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 윤대녕>의 첫 문장이다. 주인공 영빈은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 낚시부터 배운다.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 바다낚시에 그는 35cm나 되는 큰 고기를 낚는다. 잡은 고기 이름이 ‘벵에돔’이라는 것도 고참어부에게 물어보아 알아낸다.

사실, 소설 속 주인공은 소설가 자신인 셈이다. 소설가 윤대녕은 2003년 봄부터 2005년 봄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바다가 나오는 제주 바닷가에 살면서 장편소설 <호랑이는 왜-->를 썼고 건강을 회복했다. 몇 년 후, 윤대녕은 원재훈 시인과 만나 얘기한다. “바다의 생명력이 저를 건강하게 한 것 같아요.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먼 우주에서 나에게 시간을 가져다주는 거 같았어요. 가슴이 설레었어요.”

우리는 바다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면서도 ‘바다의 생명력, 바다가 가져다주는 시간’을 얼마나 낚아보았나? 바다낚시 이야기.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 배보다 큰 5.5m나 되는 청새치를 낚는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노인 산티아고는 사실 헤밍웨이 자신이 모델이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에 갔다. 책 인식기에 몇 번이나 ‘바다와 노인’을 쳤다. ‘0권’이라고 뜬다. 이상하다 했더니 ‘바다’를 먼저 썼었다.

덕분에 <노인과 바다 / 민음사 >를 번역했던 김욱동이 쓴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다>도 읽게 되었다. 김욱동은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1939~1961)가 자신에게 닥쳐온 늙음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노인은 자신의 낚시에 걸린 큰 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멋지고 불쌍한 놈이야. 도대체 나이를 얼마나 먹은 놈일까, (49P)“ “너 몇 살이야? 이번 여행이 첫 나들이인 거야? 노인이 새에게 물었다. (55p)”고기가 나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고기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 (100p)” ”

낚싯배 필라를 사서 몇 달씩 심해낚시를 하고, 4차례나 결혼하고, 사파리여행을 즐기는 ‘지칠 줄 모르는 모험가’, 헤밍웨이는 젊을 때부터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알코올 중독증에 고혈압, 당뇨, 우울증에 시달렸다. 40세 때(1939년)부터 쿠바 아바나 변두리 ‘전망 좋은 집(핑카 비히아)’에 살면서 53세 때 (1952년) <노인과 바다>를 쓴다. 다음 해인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이어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었다. 일상에 지친 사람은 여행에서 얻은 생생한 경험과 색다른 배움으로 삶을 바꾼다. 마라도 여행은 해외여행이 막힌 요즘, 국내에서 가장 먼 여행이다. 마라도행 선표는 두 시간 후 돌아오는 왕복 티켓이다. 마라도에 머문 시간은 2시간 뿐 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바람이 부는 날, ‘바다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속에 출렁거리는 남쪽끝 바다가 생생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정호승 시인의 말을 외워본다. “시간은 자신에게 자기가 주는 겁니다. 내가 주지 않으면 휙 지나가 버리지요. 인생은 시간입니다.”


김종남 위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