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이현경

비제의 ‘아를의 여인’에 인생을 건 또 한사람의 ‘아를의 여인’
고교시절 음악감상 시간에 음악 듣고 플루트에 매료돼 꿈 바꿔
2020. 09.22(화) 14:41확대축소
프랑스의 아를은 아비뇽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가장 알려진 예술의 도시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이자 ‘별’이란 소설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소설 ‘아를의 여인’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흐는 1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해바라기〉<별이 빛나는 밤〉<카페 테라스〉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아를의 유적지는 대부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이며 현재도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의 길이 시작되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아를의 여인>은 부유한 농가의 청년 프레데리는 투우장에 왔다가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택하는 비극적인 작품이다. 고흐의 <아를의 여인, 지누부인>은 남편과 함께 카페를 경영하던 여주인을 그린 것이고 ‘아를 밤의 카레’가 바로 이곳이 배경이다.

비제가 작곡한 <아를의 여인>은 알퐁스 도데의 희곡작품 부수음악으로 작곡된 것으로 연극이 끝난 후에 27곡 중 4곡을 추려 제1모음곡으로 구성한 것이다. 비제가 죽은 후 그의 친구이자 파리음악원 교수였던 에르네스트 귀로가 다시 4곡을 추려 제 2모음곡으로 구성한 것이 현재 모음곡 <아를의 여인〉으로 알려진 것이다. 두 개의 모음곡 가운데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곡은 역시 귀로가 개작한 제 2모음곡의 3곡 ‘미뉴에트’이다.

예술가에게는 어떤 한순간, 어떤 한 사람, 한 곡의 음악, 한 점의 그림이 인생의 향로를 정해버린 일이 종종 있다. 광주 출신의 플루티스트 이현경(52)의 경우도 그렇다. 꿈많은 소녀였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음악감상 시간에 비제의 ‘아를의 여인’을 듣고 플루티스트가 되겠다고 작정해버린다.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꿈을 바꾼 것이다.
루마니아 콘스탄짜 초청 독주회


“‘아를의 여인’ 중 ‘미뉴에트’에서 하프의 반주에 맞추어 연주되는 플루트의 꿈결같은 아름다운 멜로디, 플루트의 멜로디가 높이 치솟아 오를 때 느껴지는 크리스탈 같은 맑은 소리를 듣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플루티스트 이현경은 그렇게 플루트와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한 피아노를 접고 고교시절 늦게 플루트를 시작하여 전남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플루트에 빠지다 보니 미팅 같은 것도 재미가 없고 4년 내내 학교 연습실에 박혀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갔지만 힘든 유학의 길을 택했다.
“내 인생 최고의 시련기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혼자 계신 엄마를 두고 떠난다는 것도 차마 못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자 결혼이라도 하면 보내주신다고 해서 같은 음악도와 결혼해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이 대목에서 목이 메인다. 27~8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하며 흘리는 눈물이다. 여인의 깊은 내막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프랑스유학중 쎄느강변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 심사위원 전원일치 수석졸업

이현경은 파리 유학시절도 그야말로 연습벌레였다.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superieur)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석졸업 및 최고연주자 과정(concertiste) 실내악 전공 졸업, Saint Maurt(쌩모 국립음악원)을 거쳐 Poissy(쁘와지 시립음악원)도 수석 졸업했다. 그리고 2000년 귀국해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수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용윤 음악감독 시절 플투트 수석이었던 김연주 선생이 목포시향 지휘자로 떠난 자리로 돌아 온 것이다.

광주시향 시절 러시아 Rachmaninov concervatory(라흐마니 콘서바토리) 지휘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스통 크뤼넬(Gastdn Crunelle Concours) 국제콩쿠르 2위, 한국예술가협의회 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상 수상, 서울월드심포니 콩쿠르 1위 등을 차지했다. 또 모스크바 이르츠쿠츠필, 루마니아 흑해심포니필, 일본 동경프라임필, 헝가리 펫츠캄머필, 중국 하얼빈필 등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14회의 독주회도 가졌다.
2017 독주회 끝나고 제자들과함께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예비음악원 초청 듀오콘서트, 러시아 Rachmaninov(라흐마니노프)음악원초청독주회, 루마니아 constanza(콘스탄짜) 초청독주회 등을 가졌으며 KBS FM Love in Classic 패널 아시아 플루트 콩그레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2016. 일본 고베)을 맡기도 했다.
플루티스트로서의 삶은 정말 보람이 있고 분주했다. 특별히 구자범 지휘자 취임연주회는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광주문예회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낼 때의 황홀함, 그리고 그 찬란한 연주회의 멤버로 참여했다는 가슴 뿌듯함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이후 몇 차례의 정기연주회와 협연 무대, 그리고 독주회 등에서도 가끔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플루트는 오케스트라에서 보통 3관으로 편성되는데 가장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데다 유독 가로로 부는 악기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맑고 찬란한 소리, 오직 호흡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는 목관악기로서 화려함 뒤에 오는 슬픔이기도 하다.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


“무대 뒤의 쓸쓸함 …이현경이 있는 삶 찾아”

그러나 연주가 끝난 뒤의 허전함, 이제 쉰 살을 넘긴 시점에서 ‘이현경이 없는 삶’을 더이상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2015년 시향을 나선다. 이제부터는 ‘이현경이 있는 삶’ ‘음악인으로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시향 수석으로서의 삶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계속되는 일상의 반복과 자율이란 이름의 얽매임,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그냥 자유롭게 연주하고, 얘기하고, 그리고 돌아와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그런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생애 최고로 의욕 충천했던 시향 재직시절인 2008년에 시작한 에꼴드플루트앙상블 음악감독만 맡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퇴직 이후 플루티스트 제자들과 함께 한 에꼴드플루트앙상블은 광주지역에 플루트 팬들의 저변을 확대해가면서 많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의 노력으로 플루트 ‘진팬(?)’ 도 많이 생겨 연주회장이 쓸쓸하지 않다.
그러나 예술인의 삶이 연주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예비사회적기업인 주식회사 에꼴드뮤직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목표로 각종 연주회를 기획하고 공연하는 회사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5월 일곡병원 앞 거리에서 코로나 극복을 위해 수고하고 지친 의료진을 위해 창문 밖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기획공연을 했으며, 6월에는 광주광역시청 로비에서 공무원과 시민들을 위해 위로의 연주회를 열어 광주시청 직원들을 비롯해 시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앞으로도 플루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언제든지 달려가 플루트의 매력을 전하겠다고 다짐한다.

임마누엘 바하의 ‘무반주 플루트 소나타’

플루트의 매력은 어떤 것일까? 사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플루트 소리는 걸음을 멈추게 한다. 플루트의 높은 음역은 맑게 갠 하늘처럼 화창하고, ‘미뉴에트’에서 하프 반주에 맞춰 연주되는 플루트는 크리스탈처럼 청아하다. 때로는 팜므파탈 같은 관능미를 풍길 때도 있다. 또 아주 낮은 음역으로 연주할 때는 마치 색소폰과 같은 풍부하고 농익은 소리를 들려준다.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의 1악장 2주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풍만하고 육감적인 소리라고나 할까.
그녀를 매료시킨 음악이 ‘아를의 여인’이었다만 평소 그녀가 늘상 연주하는 곡은 무엇일까?

잠시의 멈춤도 없이 칼 필립 임마누엘 바하의 ‘무반주 플루트 소나타 sonata in a miner for flute’를 들었다, 바하를 좋아하지만 아버지 임마누엘 바하보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곡이며 깊이 있으면서도 멜로디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곡을 연주하면 영혼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플루트의 저음의 울림과 생동감 있는 스타카토의 진행에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작곡가 김선철 교수는 “음악 속에 스펀지처럼 빠져드는 예술인” 이라면서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는 열정이 아름다운 플루티스트”라고 칭찬했다.

베를린 필의 전설적인 플루티스트 안드레아스 블라우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주식회사 예꼴드 뮤직을 어떻게 든 뿌리를 내리도록 하여 한 사람의 플루티스트로서 광주에서도 음악 기획자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시민들에게 플루트처럼 맑고 청아한 행복을 안겨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기획, 클래식 음악 해설, 유튜브를 통한 1인 방송 등을 통해 음악으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아를의 여인’을 처음 들었던 그 날처럼 두 눈이 반짝인다.


<지형원 발행인>



이 현 경 양력

1992 - 전남대 사범대 음악교육과 졸업
1998 - 프랑스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superieur)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석졸업 및 최고연주자과정(concertiste)졸업, 실내악 졸업
1999 - 프랑스 Saint Maurt(쌩모 국립음악원) 졸업
1997 - 프랑스 Poissy(쁘와지 시립음악원) 수석졸업
2011 - 러시아 Rachmaninov concervatory(라흐마니 콘서바토리) 지휘과 졸업
2016 - 성신여대 음악학 박사
1998 - 가스통 크뤼넬(Gastdn Crunelle Concours) 국제콩쿨2위
2014 - ‘한국예술가협의회’ 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상 수상
1992 - 서울월드심포니콩쿨 1위
- 모스크바 이르츠쿠츠필, 루마니아 흑해심포니필, 일본 동경프라임필, 헝가리 펫츠캄머필, 중국 하얼빈필, 광주시향, 군산시향, 광주 국악관현악단 협연및 14회의 독주회
2011 -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예비 음악원 초청 듀오 콘서트 (러시아, 모스크바)
2012 - 러시아 Rachmaninov(라흐마니노프) 음악원 초청 독주회(러시아, 로스토프)
2016 - 루마니아 constanza(콘스탄짜) 초청독주회(루마니아)
2007 -KBS FM Love in Classic 패널
2017 - 아시아 플루트 콩그레스 국제콩쿨 심사위원 (2016.일본 고베)
-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수석 역임(2000-2015)
- 전남대, 조선대, 광주대 ,목포대, 대구예술대, 광주예고, 전주예고 강사역임
현 / (주)에꼴드뮤직 대표이사
에꼴드플루트앙상블 음악감독겸 지휘자 (2008_)
광주국제교류센터 음악위원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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