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 에세이 ‘내 인생의 노을’

2020. 09.12(토) 10:54

매직아워. 해가 서산 뒤로 몸을 숨긴 뒤부터 완전한 어둠이 될 때까지의 그리 길지 않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촬영에 필요한 일광이 남아 있어 인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명 혹은 황혼 시간대를 일컫는다. 매우 따뜻하며 낭만적인 느낌을 만들 수 있으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의 길이 아닌 소설가로 살아온 박신영씨가 두 번째 수필집 ‘내 인생의 노을’을 출간했다. 매직아워처럼 세상의 구차한 것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이야기들만을 골라 따스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첫 수필집 ‘어떤 일탈’ 발간 이후 새롭게 바라본 인생의 이야기가 촘촘이 들어 있다. 마치 수를 놓듯 지극히 차분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어떤 글에는 아직 세상에 대한 분노도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차분히 침잠된. 인생이란 두꺼운 여과지를 걸러 나온 순백의 언어들이 읽은이들의 가슴에 흐른다.

특히 4부의 ‘생각바꾸기’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바꿔지는 생각. 어쩌면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들도 그랬을 법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올 듯하다.

이 책은 1부 나의 어머니, 2부 가을이 깊어지면, 3부 내 인생의 노을, 4부 생각바꾸기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모두 50여 편의 단상들이 격자무늬의 짜임새를 갖추고 독자와 마주한다. 서로 다른 소재나 주제를 택했으면서도 그것들이 뜬금없은 것이 아니라 가로세로로 서로 연결돼 이순의 소설가 이렇게저렇게 살아온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펼쳐 진다.

작가는 구순의 노모를 이렇게 기억한다. “ 늘 베푸는 것에 익숙한 어머니의 몫은 늘 빈궁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7남매 막내며느리의 삶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위에까지 마음을 써야 하는 자리였다.”
작가는 이런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어머니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에 대해 지금은 그 또한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함을 드러낸다.

표제작 ’내 인생의 노을‘에서 “ 지나온 날들은 수고로웠으나 가치가 있었고, 아팠으나 아름다워서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 기쁨으로 가득히 사랑만 담아내어 이웃과 벗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과 짝하여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래, 그랬지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그리 살아볼 참입니다.”
참 고운 생각이 담겨있다. 작가는 지나온 세월은 세월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살아갈 삶도 사랑과 배려가 숨쉬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박신영 소설가는 신안 출신으로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농민신문 소설공모에서 ’날아가버린 새‘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집 ’아름다운 약속‘’탈출‘을 펴냈으며 광주문학상, 국제펜광주문학상, 대한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 이사장, 광주·전남소설가협회이사,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국제문학교류위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더.


지형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