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렴정(景濂亭, 광산)

2018. 06.14(목) 11:49

고려말 문인 탁광무(卓光戊 1330~1410)가 자신의 고향인 광산군 비아면의 정원에 지은 호남지역 최초의 정자. 정원 안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어 그곳에 전자를 짓고 말년을 지냈다.

연꽃을 심은 것은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1017-1073)가 애련설(愛蓮設)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고 했기 때문으로 이후 연은 고결한 선비의 삶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경렴정이란 이름은 절친했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지어주었는데 이는 경염정익재소명(景濂亭益齋所名)이란 글의 제목을 통해 밝혀놓았다.

또 정도전도 ‘경염정후설(景濂亭後設)’에서 탁광무가 선생의 광주별장에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 흙을 쌓아 작언 섬을 만들어 정자를 지었는데 익제가 그 이름을 경렴이라 했다고 썼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떻게 해야 그 정자에 한 번 올라 겸부(謙夫)와 같이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탁광무는 본관이 광산(光山), 자가 겸부(謙夫), 호가 경렴정(景濂亭), 시호가 문정(文正)이다. 내서사인(內書舍人),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탁광무는 1364고려 공민왕 때 우사의(右司儀)로서, 신돈(辛旽)에 아부하여 형패를 부리는 신돈의 심복인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도록 탄핵했다가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이후 관직을 버리고 지내는 곳에서 살았다.

다음은 익제가 쓴 경염정익재소명(景濂亭益齋所名)이란 글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부터 / 세상과는 맞지 않았네
성질이 고지식하여 말 꾸미지 못하고 / 몸이 매말라 못 생긴 얼굴
재주는 임금의 덕 보좌하기 부족하고 / 백성의 병을 고칠 덕도 모자랐네
〈돌이〉옥들 틈에 섞여서 대장이 되고 / 피리를 불면서 성랑에 끼어
제 힘을 제 스스로 재지 못하고 / 조정의 기강을 바로 하려 하니
당로들이 베개 높이 잠잘 수 없고 / 임금 앞에 주머니 끈을 매지 못했네

我生於此世 與世不相當 性直言無佞 形枯貌不掦
才微補袞職 德之藥民瘡 混玉叨臺長 吹竽備省郞
不能量己力 思欲整朝綱 當路難高枕 排雲未括囊

문헌상 나타난 호남이란 말의 처음은 탁광무의 문집인 경렴정집(景濂亭集. 권1 경렴정 편액)에 실린 해동형승천호남‘海東形勝擅湖南 상유렴정하유담上有濂亭下有潭’이라는 싯구에서였다.

사람들 앞에 억지웃음 짓기 싫어 / 온종일 수정에서 청산만 바라보네.
우리 집의 기호는 시속과는 다르네 / 이 땅의 청한은 세상 것이 아니로세
청풍명월은 공평하여 가는 곳마다 흡족하고,/ 천지는 도량이 커서 한가한 나를 내버려두네
만사를 다 잊고서 멋대로 거닐다가 / 누워서 공중에 돌아오는 지친 새를 마라보노라

懶向人前强作顔 水亭終日對青山 吾家嗜好與時異 此地淸幽非世閒
風月無私隨處足 乾坤大度放予閑 逍遙自適忘機裏 臥看長空倦鳥還-동문선 제16권-
 
이 밖에도 경염정에 관한 글이 많이 있는데 고려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원(李原 1368~1429)이 그가 죽자 읊은 만시에도 경렴정을 기억하고 있다.

천시가 사진년에 이롭지 못했는데 / 天時不利巳辰年
어찌하여 시장 와서 죽은 이를 곡하나 / 諡狀何來哭九泉
옛날에 벼슬할 땐 재상이 되었고 / 進卜當年爲宰相
물러나 살 때에는 신선이 되었네 / 退朝平地作神仙
충직에 뜻을 두어 홀에다 새겼고 / 心存忠直初銘笏
공후에 뜻 없어도 늘그막에 글 올렸네 / 志不公侯晩奏篇
깨끗한 가슴속엔 참된 기상 있었으니 / 灑落胸中眞氣像
경렴정(景濂亭)의 풍월은 끝이 없네 / 濂亭風月坐無邊
용헌집 제2권

또 경렴정 편액(景濂亭扁額)의 제목의 시에서 호남(湖南)이라는 말이 나온다. 

海東形勝擅湖南 上有濂亭下有潭 弄月吟風多靜味 觀魚聽鳥足閒談
島頭松葉合雲飽 池面蓮花帶雨酣 幽趣溪山眞釀得 詠而歸日飮而甘
見草溪鄭氏海東詩/景濂亭集卷之一

후세의 선비들이 얼마나 염계를 사모하고자 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시다. 또 최립(崔岦)은 흰 연꽃의 청정함을 선녀가 차고 있는 옥패를 물속에 옮겨 놓은 것과 달속의 미녀 항아가 지녔던 아름다운 비녀를 떨어뜨려 놓은 것에 가을 달 아래 이슬마저 머금고 있는 흰 연꽃의 청정함을 표현한 착상이 기차다.

홍련은 백련 꽃봉오릴 닮고자 다투는데 /흰빛이 얕은 모래에 선명하게 비치도다
신녀가 물속에서 옥패를 옮겨 놓은 듯 /항아가 천상에서 옥비녀를 떨어뜨린 듯  
紅蓮爭似白蓮葩 晧色鮮明映淺沙 神女水中移玉佩 姮娥天上墜瑤釵 

초가을 달빛에 이슬은 더욱 맑아  /한점의 진흙도 전혀 묻지 않았도다.
천고에 은근한 주무숙은 /장차 무슨 뜻으로 이 꽃을 사랑할꼬
初秋月露仍添潔  點塵泥未敢加 千古殷勤周茂淑 也將何意愛玆花


한편, 탁광무의 아들 탁신(1367~1426)도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뒷산에 탁송정(卓松亭)이란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경렴정이 광산구 비아면 월계리 내촌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곳이 오랫동안 광산 탁씨들의 세거지였고 1950~1960년대에 살았던 주민들이 ‘탁정자터’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마을에는 2개의 정자가 있었는데 마을 앞에는 경렴정이, 마을 뒤 소나무 언덕에는 탁송정이 있었다. 사) 향토개발협의회가 간행한 ‘광주 첨단기지 문화유적’에도 “광산군 비아면 월계리 407번지 일대에 약 600년 수령의 노거수 푸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 당시 주민들은 당산을 귀향나무, 할아버지 당산으로 불렀으며 탁신이 심었다고 증언하고 있다(향토사학자 이종일)

또 광산탁시 종회 부회장 탁형채의 증언에서도 “귀향나무라고 부른 것은 탁신이 고향으로 돌아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한 두그루가 첨단공원으로 이식돼 있다고 알려진다.
탁신은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이다. 공양왕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부모가 연로해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잘 모셔 이로 인해 우습유(右拾遺)로 천거되었다. 이후 세종조에 이조참판, 예조참판, 예문관제학, 의정부참판 등에 올랐다.

광산탁시 대동보 권1에 따르면 탁송정 내에는 어제시(御製詩) 갑계도대여명시(甲契圖帶礪盟詩)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감계도대여명시는 이방원이 태종에 오르기 전 탁신을 비롯한 21명의 갑계원들과 뜻을 함께 하기로 명세한 시라로 알려진다.

문화통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