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어찌해야 ‘요산요수’ 입니까?

2017. 10.04(수) 07:47

무등산옛길 시작점, 산수오거리에서 1.5km 걸어 오르면 잣고개 전망대다.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 숲도 성냥 곽 같은 자동차 대열도 다 눈 아래다. 까마득한 송정까지 시야가 툭 트였다. 잣고개 마루, ‘無等山國立公園’이라 쓴 큼직한 돌기둥이 우뚝 막아선다. ‘여기서부터 속계(俗界)가 끝나고 산계(山界)가 시작된다’고 일러 주는 수문장 같다.

‘입산을 허해주소서!’ 산신께 고(告)하고 무진고성 성벽 안으로 들어선다. 갑자기 칙칙한 나무들이 빼꼭 들어찬 깊은 골짜기다. 한 모퉁이 내려서자 ‘樂山樂水’, 하얀 글자를 새긴 자연석이 맞이한다. 사람 키만 하다. ‘잣고개 등산회’가 세운 표지다. ‘樂’자를 ‘즐길락(낙)’으로 혹시 읽는 사람은 한글세대이다. ‘요산요수’, ‘좋아할 요’로 읽어야한다.

“知者는 樂水(요수)하고 仁者는 樂山(요산)하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淨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라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정적이라 산을 좋아하며 ---/ 성백효 역주”라는 공자님 말씀(論語 雍也편 21章)을 축약한 말이다. 주자(朱子)는 공자님 말씀을 자세히 풀이(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유통하고 막힘이 없어서 물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고 옮기지 않아서 산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표지석을 지나칠 때마다 그 뜻을 다시 새겨본다. 단순히 ‘어진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은 산과 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하고자 함이 아닐 것이다. ‘산과 물을 좋아하면 어진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권유일 것이다. 그런데 산을 다니다보면 이 말씀을 실감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너그럽고 어질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 물 한 모금, 김밥 한 줄도 나눠준다.

산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너그러워졌을까. 아니, 너그럽지 않은 사람은 아예 산에 안 오는 때문 아닐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를 즐겨본다. 산속에 살면서 나물, 버섯, 약초 캐고 채소 기르고 개울에서 고기도 잡고 가축도 키우는 자급자족 ‘자연인’들이 나온다. 대개 남자 혼자 산다. 다들 건강한 몸에 평온한 얼굴, 행복한 모습이다. 산에 살기 때문에 너그럽게 된 사람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왜 홀로 산속에 살면서 ‘자연인’이 되었는가? 크게 사업에 실패 했거나 큰 병에 걸려 생활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사람도 있다. 산과 물은 그들에게 건강과 삶에 대한 의지를 주었다. 그들은 산수 속에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고 생활을 이으며 건강과 행복을 찾았다. ‘산짐승들이 심어놓은 야채나 곡물을 파먹어버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같이 먹어야지요!” 답한다.

욕심을 초탈한 도인(道人)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거대한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살다보니 다들 산수를 닮아 도인에 가까워졌겠지. 무등산에도 도인이 사셨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선생은 46세 때 증심사 아래기슭 춘설헌(春雪軒)에 들어와 춘설차를 재배하고 산수화를 그리며 돌아가실 때까지 40여년을 무등산에서 사셨다. 말년에 의재(毅齋)라는 호 대신 의도인(毅道人)이라는 호를 즐겨 쓰셨다.

그러나 속계에 묶여 사는 속인이 산수를 닮으려면 어찌해야하나? 등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지가 계셨다. 은퇴이후 매주 2~3회씩 산에 올라 십 수 년 만에 ‘2천개 넘는 산봉우리에 올랐다’며 산 지도를 보여준다. 오른 봉우리이름마다 붉은 사인펜으로 줄을 쳐 산 지도는 온통 붉은색이다. 70대인 친지는 40대처럼 활기차다. 산에서 얻은 활기 덕분이다.
‘꼭 산봉우리에 올라야 요산요수일까 --.’ 나는 둘레길을 걷는다.

김종남<언론인>

김종남 <언론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