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 사실주의 기법과 비구상성 동시수용 시각적 이미지 확산
| 2017. 07.23(일) 08: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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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처럼 단박에 한 화가로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은 그의 전력이 말해준다. 조현종은 그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축적된 기술 및 미적 감각으로 단숨에 화단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앤디 워홀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험과 기술 및 미적 감각을 무기로 하여 세계적인 팝아트의 기수가 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 또한 그 전철을 밟고자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확실히 전통적인 회화의 표현방식과는 다르다. 소재 및 대상을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듯싶으나,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세부적인 묘사기법으로는 팝아트의 한 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마릴린 먼로를 비롯하여 오드리 헵번, 나탈리 포트만, 마돈나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이미지를 소재로 한 일련의 인물화는 팝아트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팝아트의 속성을 따르면서도 그 흐름에 함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미적 감각 및 해석을 통해 유채화의 깊이를 추구한다. 팝아트의 한 속성을 따르면서도 아크릴이 아닌 유채로 작업한다는 사실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필시 작품으로서의 깊이와 아름다운 발색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심미적인 태도에 기인하리라.
실제로 그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화려한 발색의 아름다움은 유채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차례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 배어나오는 색채의 깊이감은 탐미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그는 이처럼 유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자유로운 원색적인 색채배열은 물론이려니와 보색대비에도 거침없다. 작품에 따라서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색채대비 및 조화로 인해 황홀경에 이끌리는 듯싶을 만큼 격하게 반응하는 감정을 저지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듯이 짐짓 화려한 색채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소재 및 대상에 기인한다. 세계적인 스타들의 이미지를 알록달록한 꽃으로 장식함으로써 원색적인 색채의 도입은 필연적이다. 원색적인 꽃으로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사뭇 의도적이다.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꽃을 통해 스타들의 화려한 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화려한 장식적인 소재 및 색채이미지는 흑백이나 단색조로 표현되는 인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인물의 이미지가 장식적인 꽃의 화려한 색채에 압도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상반되는 색채대비로 인해 인물이 가지고 있는 청순한 아름다움이 되레 돋보이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질적인 두 가지 색채이미지를 하나의 통합된 이미지로 관철하는 조형적인 의지가 인상적이다. 원색의 꽃에 묻히는 스타의 이미지는 순수하고 청순하며 가련하게 보일 지경이다. 화려한 삶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수한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섬세하고 정밀하며 세련된 형태미를 지향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풍부한 경험은 회화작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목적화가 아닌 순수회화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전 일이고, 각 장르간의 벽 역시 존재하지 않는 혈실에서 디자인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셈이다.
실제로 작품이 말해주듯이 그는 사진을 능가하는 빼어난 묘사력을 갖추었다. 스타들의 사진을 인용하고 있지만 사진의 이미지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다. 손의 기술과 함께 심미적인 감각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사실적인 이미지가 요구되는 작업에서는 극렬하게 묘사한다. 반면에 회화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는 작업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를 포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느 면에서 극사실과 비구상이라는 대척점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작품세계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 사실과 비구상을 병행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흐릴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두 가지 형식을 병립하는데 전혀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상반되는 작업을 통해 어느 한쪽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보완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의 화면에서 사실과 비구상이 혼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회화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는 기법의 혼용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은 기술적으로나 기법 그리고 색채이미지 등 모든 면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다. 출중한 묘사력과 다양한 기법을 보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즐겁다. 여기에다가 폭넓은 색상을 구사함으로써 한층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인물을 비롯하여 정물 풍경 등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외연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도 다양한 기법 및 조형감각 그리고 색채감각을 소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조형에 관한한 금기사항은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어쩌면 비구상적인 조형언어를 수용하는 가운데 형태를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일련의 작품은 확실히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를 중심적으로 하는 작업과는 사뭇 다른 비구상적인 조형언어는 농후한 색채와 맞물려 독특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형태보다는 색채 포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볼 수 있을 만큼 색채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우며 짙은 색채이미지는 그가 추구하는 색채미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존의 한국화단에서는 볼 수 있는 독특한 색채대비 및 명도대비는 그 자신만의 심미적인 표현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초상화 형식의 정적인 인물뿐만 아니라 발레리나와 같은 동적인 포즈의 인물화도 선호한다. 그런가 하면 문학적인 서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춘 인물화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의 재현이라는 영역에 갇히지 않는 그의 조형적인 상상은 자유로움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어떤 상상의 이미지도 능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손의 기술에 기인한다.
그는 회화적인 순수성을 기반으로 하되 현실적인 미감, 즉 현대인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다. 다시 말해 현대인의 미적 감각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장식적인 아름다움이야말로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 또는 현대인이 요구하는 회화적인 요건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화가가 아닐까.
신항섭(미술평론가)
신항섭 (평론가)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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