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문화전당’에 ‘내마음 텃밭’ 만들면 …

2015. 04.07(화) 20:21

집에서 무등도서관이 가깝다. 걸어서 자주 간다. 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독서사랑방에 무료 문화강좌, 한문도 가르쳐준다. 또 앞에는 산책하기 좋은 우산 공원이 있다. 멀리 남쪽 하늘엔 짙푸른 무등산이 시원하게 손짓한다. 나에겐 무등도서관이 가까운 게 큰 복이다. 갈 때 마다 행복을 느낀다.
광주의 양축인 금남로와 충장로의 시작점에 자리한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시민에게 큰 복이다. 첫째 가깝다. 걸어서든 차타고 가든 쉽게 자주 갈 수 있다. ‘행복은 소유(所有)가 아니라 향유(享有)’라고 했다. 제주도에 좋은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말마다 향유할 수 있겠는가. 전당과 가깝다는 복은 한국 어느 도시보다 광주가 제일 많이 받은 셈이다.

또 하나, 아시아 최대를 자랑하는 복합문화시설, 그 엄청난 운영비를 나라가 감당해준다. 물론 5년이란 시한부이지만, 소유하지는 말고 향유만 하라니! 감사할 복이다. 문화를 향유하려면 돈이 든다. 고급문화일수록 돈이 더 많이 든다. 광주시민은 고급문화를 다른 도시인들보다 절약하면서 싸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큰 복은 도심활성화이다.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이 일본 가나자와(金澤)의 ‘21세기 미술관’처럼 매년 150만 명씩 관광객을 몰아올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다. ‘21세기 미술관’은 가나자와시가 도심공동화를 막기 위해 세운 현대미술관이다. 전남도청이전으로 빚어진 광주의 도심공동화 현상은 10여 년 동안 충장로 금남로 경기를 죽 쓰게 만들었다. 이제 옛 전남도청 자리에 세워진 문화전당은 광주도심지에 활기를 몰아올 화수분이다.

그러나 대복이라고 다 대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박이 다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바라는 대박도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보탬도 안 되고 심지어 불행이 되는 경우마저 생긴다. 무병장수한다는 천도복숭아를 주어도 먹을 줄 모르면 자랑만하다 썩혀버린다. 복을 행복으로 만들려면 학습과 실천이 필요하다. 학습과 실천을 계속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가나자와는 도심공동화를 막은 성공사례로 세계에 알려졌다. 인구 50만 명이 못되는 가나자와는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현대미술을 대중화시켜 한 해에 외국인만 1백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명품도시를 만들었다. 광주는 이미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현대미술 전시 ‘광주비엔날레’를 2년마다 열고 있다. 거기에 아시아 최대의 문화전당이 문을 열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조건은 훨씬 더 좋다.
이제 시민들이 할 학습과 실천은 무언가. 내 집 안마당처럼 문화전당을 자주 드나들며 활용하는 일이다. 전시와 공연을 즐기는 일이다. 시민참여 학습과 실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있다.

몇 년 전,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이무용교수가 내놓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문화전당의 옥상을 전부 텃밭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분양한다. 분양받은 시민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전당에 모여들어 텃밭을 가꾼다. 시민참여문화는 물론 생산문화측면에서도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겠는가?” 아마 대개 그런 뜻이었던 것 같다. 물론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식 제안은 아니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한담이었다.
꿈같은 아이디어이지만 시민들을 참여시키자는 근본취지는 높이 사야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꼭 땅이 있어야 텃밭인가. 마음의 텃밭은 안 될까? 광주호 생태공원에 가면 ‘내 소나무’가 하나 있다. 나밖에 모른다. 솔숲에서 멋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골라 ‘내 마음속으로 정한 내소나무’이다. 생태공원에 갈 때마다 들러서 만져본다. 생태공원의 멋진 풍광 속에 사는 그 소나무를 나라고 상상해보면 즐겁다. 문화전당에도 내 마음의 텃밭을 하나 만들어 씨앗 심고 싹 틔워 올 가을 수확하는 즐거움을 갖고 싶다. 너도 나도 함께 하면 ‘더불어 행복’이 바로 이것 아니겠나.

김 종 남 (언론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