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선생 일가 편지·문서·그림엽서 등 다수 발굴

친 오재영 보성군수의 친필 서한·兄의 서예작품도
고서화 수집가 송부종씨 소장… “기념관에 보관되었으면”

2014. 04.29(화) 09:58

서양화가 오지호(본명 점수.占壽1905~1982) 선생이 일본에 유학하면서 화순 동복의 고향집에 보낸 편지와 그림이 그려진 엽서, 오지호 선생의 형 오진(吳鎭)씨가 경성보통학교 재학 중 동생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오지호 선생의 부친 오재영(吳在永)씨가 군청의 서기에게 보낸 위임장 등 수점이 발굴했다.
인터넷 신문 문화통이 서울의 고서 수집가를 통해 입수한 자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오지호 화백이 태평양 미술전람회에 2점을 출품해 그 가운데 1점이 입선했다는 편지와 직접 그림을 그려 보낸 엽서다.

화순 동복의 형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 금년 3월 1일부터 개최된 태평양화회전람회에 2점을 출품하였더니 그 중 한 점이 입선되었습니다. 이 전람회는 금년이 26회의 일본서 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대전람회이고 그 회원들은 일본 현 화단의 중견들입니다. 한 점이 입선이 되었사오나 목록에 보면 아시는 바와 같이 회원들의 작품을 배열한 제 5실의 가장 좋은 자리에 걸렸습니다. 이번 26회 공모작품은 2,800여점 중 300점이 입선되었습니다. 지난번 1930년도에는 응모작 3천여 점 중 400여점이 입선하였습니다. 이제 일본의 여하한 전통의 전람회든지 다 입선하고 제전(帝展) 하나만 남았습니다. 지금은 친구의 화실에서 제작 중입니다. 3월 2일 오점수."라고 쓰여 있다.

이 편지에는 태평양화회 입상자 명단이 실린 포스터가 동봉되어 있는데 한국인 입상자는 오지호와 구본웅(具本雄.1906~1953) 단 두 사람뿐이다. 구본웅은 일본대 전문부 미술과를 졸업(1926), 다시 태평양미술학교 본과를 나왔다. 주로 도쿄에서 열린 이과전과 독립전 등의 전람회에 출품하고 귀국 후에는 서화협회 전람회에 출품했다. 작품의 경향은 야수파의 표현주의적 경향을 띄었다. 2살 때쯤 가정부의 부주의로 마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서울 로트렉'으로 불렸다.

그림을 그려 보낸 엽서는 한복을 입고 글씨를 쓰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화창한 봄날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모습을 그린 수채화 1점, 그리고 말을 탄 일본 군인을 그린 그림 등이다. 이들 작품 가운데 한복을 입고 글씨를 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은 형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며 수채화는 한가한 봄날의 풍경이다. 또 말을 탄 일본 군인에서는 뛰어난 스케치 능력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 가운데는 오지호의 부친 오재영 보성군수가 군수직을 떠나면서 보상군청에 보낸 위임장도 있다. 이 위임장에는 “군서기 윤주백(尹柱伯)에게 2월분 49원 50전 수령을 위임함. 명치 44년 2월 12일.”이라고 씌여 당시의 군수의 급여를 알 수 있으며 한일합방직후 군수를 해직했거나 사표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오재영의 또 하나의 자료는 직원들에게 서명을 받은 회의소집 문건으로 직원들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 서명했다. 다른 자료는 오진이 오지호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14세 때 쓴 습자 등이다.

이 같은 자료는 고흥출신으로 서울에서 고문서 수집가로 활동하는 송부종(73. 宋府鍾)씨가 대구의 수집가로부터 입수해 20여 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 송씨가 이 자료를 입수하게 된 것은 우리지역의 역사적 인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향에 보내져 보관되었으며 하는 바람에서다.

송씨는 대학 졸업 직후 5급 직원으로 우체국에 취직해 철도우체국, 서울역 우체국 중앙우체국 등에 근무했다. 중앙우체국에서는 야간근무를 했기 때문에 1973년 마포에 우표사를 열어 이른바 '투잡'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국내 우표감정사 3명 가운데 한사람으로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6년 퇴직 후에는 본격적으로 고서수집가로 나서 현재는 강남구청 인근에 자료실도 냈다.


어려서 사서(四書)를 공부한 데다 우표사를 운영하다 보니 고문서에도 관심이 생겨 직접 한문공부를 하기도 했다. 실체봉투를 중심으로 수집하다가 주변 학문까지 눈을 돌렸다. 법제, 체신사 등 근대개화기 자료 등 발표되지 않은 1차적 자료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그가 집중한 것은 문학가들의 육필원고다. 일제시대 등단한 문인 들의 육필원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담양 가사문학관이 들어설 때도 일부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인들의 육필원고 이외에도 서양보다 200년 앞선다는 고려말의 개성부기(송도사개치부법) 30책을 비롯해 주미 초대공사 박정량이 피어스라는 광산(鑛山(광산))기술자를 데려온 계약서 원본과 근대채광법이 기록된 채광지록, 경비지출 내력 등도 소장하고 있다.
또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의 설립자 알렌의 친필 편지 10여 통도 소장하고 있다. 이 편지 일부는 경매를 통해 수집한 것이고 일부는 미국에 세차레나 건너가 받아온 것도 있다. 또 1894년 후치카와 유키치(1835~1901. 福澤諭吉) 가 쓴 일본유학생 파견계약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김윤식 이완용 등 123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후치카와 유키치는 막부시대 말기 유신기에 일본이 서양제국의 압력을 뿌리치기 위해 서양문명을 의욕적으로 섭취, 이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사상가이다. 한국의 유길준과 같은 사람으로 번역서 및 저서, 논설, 서간문 등을 통해 서양의 충격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서양사상의 섭취과정을 고찰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일본국민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이질적인 사상사적 배경을 지닌 서양의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한 그가 이해한 서양문명이 일본의 문명개화를 위하여 어떻게 재구축되고 도움이 되었는지에 보여주었다.

한편, 송씨는 경희대 재학시절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으로부터 시를 써보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사양했다. 체신공무원으로서 우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다보니 근현대 자료에 주목하게 되었고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송씨의 꿈은 본인 소장의 많은 자료 가운데 문학인들의 육필원고를 중심으로 육필문학관을 설립하는 것.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어서 희망하는 지자체나 기관이 있으면 협의를 거쳐 제공할 생각이다.

1972년에 결혼, 2남 2녀를 두었다. 자녀들 모두 대학공부를 마쳤으나 아버지가 하는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아 걱정이다. 다행히 최근 일본문학을 전공한 딸이 관심을 갖는 눈치여서 내심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채종기 편집위원>


채종기 위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