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함칼럼> 밥상머리

2013. 06.14(금) 14:53

최근 상영된 영화 <고령화 가족>은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감옥에 드나드는 큰아들, 실패한 영화감독인 둘째 아들, 두 번씩이나 이혼하고 엄마 집에 얹혀사는 딸, 그리고 그 딸의 출생비밀을 숨기고 살아가는 어머니.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거기에 까딱하면 형제, 남매끼리 욕설을 해대고 주먹이 오가는 ‘콩가루’ 집안이다.

자식들은 다 그 모양이지만 고령의 어머니는 화장품 외판원을 해가며 하루가 멀다하고 삼겹살 파티를 연다. 내일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먹여주며 웃고, 질투하고, 그리고 화해하며 살아간다. 좋든 싫든 둘러앉는 밥상머리가 이들의 ‘힐링 캠프’인 셈이다. 남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자식들이지만 어머니에게는 한없이 귀한 식구들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식구끼리 둘러앉아 삽겹살을 먹고 싶을 것이고, 아니면 식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말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삼겹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삽겹살 한 근의 행복’을 누린 것이 무릇 언제인가.

그랬다. 대가족으로 살아갈 때는 밥상머리가 가정교육의 교실이자 의사소통의 마당이었다.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교육의 마당을 잃어버렸고 의사소통도 막혀버렸다. 새벽같이 학교에 가야하는 자식들은 우유에 빵 한 조각이면 그만이다. 밤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린 큰아이는 새벽에야 잠이 들었고 작취미상의 아버지는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출근해버렸다.

온 식구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현대가정의 모습이다. 말 할 사람도 없고 혼자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주부들은 우울증이 깊어지고 급기야 자살, 이혼 등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 30년차 이상 부부들의 이혼도 지난해에만 8600건(8.8%↑)이나 접수되는 등 10년 전에 비해 2.4배나 증가했다. ‘밥상머리’가 없어지면서 ‘우리’ 아닌 ‘홀로’가 만든 비극이다.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 속에서도 최근 너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노부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파킨슨병으로 입원중인 아내를 간호하던 70대 노인이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숨진 것이다. 이 노인은 간경화를 앓고 있었으면서도 매일 나주에서 전남대병원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아내의 병구완을 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50년 전 결혼한 이들은 부부의 정이 각별했다고 알려져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비슷한 시기에 경북 청송에서는 80대 노부부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식들에게 남긴 A4 한 장 분량의 유서에는 “미안하다. 너무 힘이 든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어 놓았다. 부인이 4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왔는데 자기가 죽은 뒤 혼자 남을 아내를 걱정한 나머지 정신이 온전할 때 동반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자살예방센터 정택수 소장은 “가족관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 이제 1인 가족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노부부들은 ‘독거노인’이 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며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혼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느니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반 자살하는 노부부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밥상머리’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혼과 자살의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다. <고령화가족>처럼 ‘도리상 삼겹살 파티’가 꼭 필요한 시대다.

지형원 <문화통 대표>



지형원 mtong@mton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