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식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출간

우울과 비애, 그리고 예술가 멜랑콜리를 키워드로 본 서양미술

2013. 05.14(화) 13:28

미술사가 이연식씨가 예술가들의 멜랑콜리를 키워드로 본 서양미술 이야기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를 출간했다. <이봄 출판간, 15,000원>
저자는 흔히 예술가나 예술작품과 함께 이야기되는 멜랑콜리 기원과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네 가지 기질 중 우울질, 즉 멜랑콜리는 정신적 능력이나 예술적인 창조성과 관련이 깊다고 믿은 것이다. 즉, 예술적 창조력, 영감, 통찰 등이 바로 멜랑콜리에 담겨 있다고 여겼다. 이후 멜랑콜리 기질이 다분한 사람인 멜랑콜리거(멜랑콜릭)는 흔히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로 진화됐다.
글쓴이는 특별히 일곱 명의 화가에 집중해 그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 어떤 징후, 즉 멜랑콜리를 읽어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가운데 멜랑콜리가 담겨진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다 빈치는 사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한 화가로 드로잉에 그의 멜랑콜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농민화가 피터르 브뢰헬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멜랑콜리의 대표작이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맹인들의 행렬 속엔 눈 먼 자가 눈 먼 자를 이끌어 도랑에 빠트리는 잔인한 세상사가 있다. 삶에서 유독 잔인함이 보였던 브뢰헬은,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멜랑콜리와 대면한 화가로 꼽혔다.
에드가 드가는 가장 전형적인 멜랑콜리커로 등장한다. 인상주의 화가이면서 자연풍광에는 관심이 없었던 화가이자 결국 세상 사람들의 오해 속에 남겨진 화가, 드가는 오히려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말년의 자화상을 보면, 그는 이미 멜랑콜리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오딜롱 르동, '이카루스의 추락' 1876.

외로움으로 평생 상상의 세계를 꿈꾸었던 오딜롱 르동의 그림은 그 자체가 멜랑콜리하다. 또 젊은 시절 목사가 되고자 했던 고흐는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에드가 드가가 세련된 멜랑콜리커의 전형이라면, 고흐는 우리가 생각하는 멜랑콜리한 예술가의 전형이다.
20세기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에는 늦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외로움, 멜랑콜리가 담겼다. 그의 작품에는 19세기 화가들이 그린 밤과는 달리 ‘향락’ 대신 ‘외로움과 멜랑콜리’가 있다.
그리고 현대인이 직면한 가장 큰 멜랑콜리인 재난을 앤디 워홀의 작품을 통해 살폈다. 앤디 워홀은 몇 번의 사고를 겪었으나 그를 모두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겨룬 결과물이고, 그의 재난 시리즈는 여배우 시리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멜랑콜리 속 매력은 거친 풍광과도 같은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감내할 뿐 아니라 결코 도망치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