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왜 일기를 안 씁니까!”

2013. 04.24(수) 15:28

“하버드 대학생들의 첫째 소원은 ‘글잘(글 잘 쓰는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첫 번째로 드는 예이다. 물론 하버드생들이 원하는 ‘글잘’은 취업하기 위한 ‘글잘’은 아니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글잘’이다.

취업난에 애가 타는 대한민국 지방대학생들에게 ‘글잘’은 무슨 의미인가. 지방일수록 ‘글잘’은 더 절실하다. 스펙이 화려한 ‘인(in)서울’대학생들보다 지방 대학생들이 유리한 점은 글뿐이기 때문이다. 글은 비싼 성형으로 얼굴을 다듬지 않고도,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지 않고서도 상대를 설득, 감동시킬 수 있다. 왜소한 다윗은 작은 돌을 던져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직접 몸으로 부딪쳤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글은 지방대생들에게는 ‘다윗의 돌’이다.

글을 잘 쓰려면 어찌 해야 하나. 글은 생각을 단어로 옮겨놓은 것이다. 생각은 안개 같다. 생각의 99%는 한 시간도 못되어 바로 흩어진다. 오늘 배운 것도 적어놓지 않으면 내일이면 90%는 기억에서 사라진다. 좋은 풍경을 사진기로 찍어놓듯, 좋은 생각을 종이에 정착시켜야 한다. 남에게 보이고 나도 다시 볼 수 있다.

‘펜과 종이를 들고 하루 24시간 메모하라’.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 술 먹다가도 잠자다가도 메모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메모만 잘하면 좋은 글이 써지나. 천만의 말씀, 메모는 집을 짓기 위한 벽돌이나 목재일 뿐이다.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일기를 써라.” 반응이 없다. ‘일기 쓰고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는 말에 한 두 명이 손을 든다. 초등학생 때 일기 안 써본 사람은 없다. 방학숙제로 한꺼번에 며칠 것을 몰아 쓰느라 끙끙댄 경험들이 있다. 초등학교를 나오면 일기쓰기는 끝이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일기를 쓰는 사람은 천연기념물처럼 찾기 힘들다.

왜 안 쓰느냐? 일기 쓰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날마다 빼지 않고 쓰는 게 고역이다. 첫째이유는 강제성이 없다. 일기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며칠 몇 달씩 빼먹어도 아무도 꾸지람을 않는다. 둘째는 의심증이다. 일기쓰기가 돈 벌고 출세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일기 안 쓰는 변명거리이다.

글쓰기 강의 마지막은 실전연습이다. 모든 글은 강제성이 있어야한다. 좋은 글일수록 마감시간에 몰려야 나온다. 제목은 신문에 나온 취업 논술문제중 하나를 골랐다. ‘취업시험에 낙방했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써라.’ 30분을 주었다. SNS때문에 편지에 익숙해진 세대들이다. 대상도 가장 가까운 엄마이다. 다른 논리적 제목 보다 훨씬 쉬운 주제이다.

발표를 시켰다. 몇 사람은 자기 글을 읽다가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그러나 글은 얼굴도 소리도 없다. 눈물도 없다. 자신을 울린 그 글이 냉철한 채점관의 마음까지 울릴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글쓴이의 얼굴도 모르는 제삼자를 울릴 수 있는 글은 어떻게 나올 수 있나.

“공부의 정답은 복습이다.” 몇 년에 걸쳐 서울대신입생 3천 여 명에게 조사한 결과란다. 글쓰기의 정답도 복습이다. 일기는 복습노트이다. 일 년 365일 메모하고 일기 쓰고, 수십 수 백 번 되풀이 읽는다. <나무>, <개미>, <상상력 백과사전>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열네 살 때부터 써온 일기가 자기에게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스토리를 제공한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주위에 늦도록 취업 안 된 아들딸, 결혼 안 하는 아들딸 때문에 애를 태우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꿍꿍 앓는다. 엄마아빠들이 다 커버린 아들딸을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나. 시인 박형준은 ‘맞춤법도 틀리고 글자도 삐뚤빼뚤한 어머니의 편지를 받으며,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일이 있든 없든 부모들도 다 잠재적인 취업준비생들이다. 팔짱만 끼고 있어선 되는 일이 없다. 펜을 들자, 편지를 쓰자.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 일기 속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