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함칼럼> 시티즌 오블리주
| 2013. 03.24(일) 07: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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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깔레시민은 영국군에 저항하다 결국 1347년 항복한다. 이에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여섯 사람의 시민이 목에 밧줄을 메고 걸어와 처형당할 것을 요구했다. 맨 먼저 제일의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나섰다. 이어 시장 ‘장데르’, 부자상인 ‘피에르 드 위쌍’그리고 드 위쌍의 아들이 나서자 시민 3명이 또 나타나 7명이 되었다.
외스타 슈드가 이렇게 제의한다. 제비를 뽑으면 행운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내일 아침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모든 사람이 나왔으나 외스타 슈드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먼저 자신의 집에서 자결해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얘기에 감동한 영국 왕비가 사면을 간청하여 사형을 면하게 되었고 그 후 깔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이 자랑스런 이야기는 1884년 로댕에 의해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국제영화제의 도시 부산에서 노블리스가 아닌 보통시민들에 의해 ‘시티즌 오블리주’가 실행되고 있다.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시민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는 것이다. 시민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 한 달에 5만원씩 내겠다는 사람 355명을 모집하고 있다. 이 숫자는 2011년 말의 부산 인구 355만 명에 근거한다. 시민 1만명 가운데 한사람만 동참해주면 355명의 회원을 확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했던 이 실험이 현재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참자가 이미 100여명을 넘어섰다. 주부, 학생, 의사, 시장의 상인들도 참여하고 나섰다. 드디어 지난 3월 9일 부산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창단연주회는 성공적이었고 시민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아시아의 문화도시를 자처하는 광주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지금 부산에서 이뤄졌다.
그들의 출발은 이렇다. 부산시립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한 교향악단이기 때문에 시민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시민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특정인이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도 이른바 시티즌 오블리주를 실천하자고 외친다. 보통시민들이 ‘문화적 혁명’을 꿈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얼마 전 광주에서는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연임문제를 놓고 한차례 파동이 있었다. 지휘자의 연임포기로 일단락이 되었지만 이제 교항악단을 넘어 시립예술단 노조가 오디션과 공연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비단 광주시향의 경우만이 아니다.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모집에 대한 공고도 ‘위인설관’의혹을 샀고 무용단 예술감독도 직업무용단 근무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몰고 가다가 되돌린 점 등 실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광주시립예술단은 광주지역 예술인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다. 그러기에 기를 써가며 자리를 보전하려고 한다. 마흔이 넘은 발레리나, 기량이 떨어진 연주자 등이 버티고 있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젊은 예술인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매년 5%씩이라도 새로운 사람들로 수혈(?) 되지 않는 한 광주시립예술단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세종문회회관을 비롯한 많은 예술회관들이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해가며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광주시도 예술단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확실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광주문화예술회관 관장을 외부 전문가로 영입하는 등 특단의 대책마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남문화회관의 성공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모두가 오피니언 리더인 시대다.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리더, 행동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광주시립예술단은 ‘깔레의 시민’의 이야기를, 광주시민들은 시민오케스트라를 추진하고 있는 부산의 시민들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시티즌 오브리주’를 실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형원<문화통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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