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시대의 문화, 방명록(芳名錄)
| 2013. 01.01(화) 08: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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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예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진다. 지난 12월 4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과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백영수 회화 70년’전에 나온 1952년 백영수 작품전(부산 녹원다방) 방명록에 쓰여진 예술인들이다. 한 줄의 시를 남긴 사람, 그림을 그려놓은 사람, 격문을 쓴 사람 등 다양하다.
1950년대 초 서울의 문화 살롱이라고 할 수 있는 모나리자 다방에서 열렸던 백영수전(1953년) 방명록도 있다. 소설가 김동리 황순원, 시인 조지훈 김구용 김상화, 화가 김환기, 영화감독 신상옥 등이 이름이 보인다. “밤이 좋아요”라고도 썼고 “ ‘밤’이란 그림이 좋아요.”라고 수정해 놓은 사람도 있고, “그림은 내일 …”이라고 써놓고 간 흔적도 있다.
지난 9월 발간된 문화통&Asia 가을호에도 귀중한 방명록 하나가 발굴, 공개된 적이 있다. 단기 4286년(1953년) 9월 19일 광주 럭키홀에서 시문학사 주최로 열린 ‘미당 서정주선생 송별기념 시의 밤’ 방명록이다. 여기에는 행사를 주최했던 다형 김현승, 철학자 정 종. 극작가 김포천, 연극인 장용건 등의 이름이 보인다.
방명록이란 어떤 일에 참여하거나 찾아온 사람들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그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 기록을 일컫는다. 오늘날에도 각종 행사나 결혼식, 장례식 등에 방명록을 비치해놓은 곳이 많다.
박근혜 제 18대 대통령 당선자도 선거일 다음날 아침 국립 현충원 방명록에 “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썼다. 2013년 새해 아침에는 " 국민 열망에 부응한 새 희망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라고 썼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쓸까에 관심을 모았음은 물론이다.
‘백영수 회화 70년’에 전시된 60년 전의 방명록을 다시 보면서 뭉클한 감동과 함께 방명록이 시대의 기록이자 값진 문화유산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각종 미술전람회에 나가면 어김없이 방명록이 준비돼 있다. 아예 연락처를 적은 방명록도 있지만 화선지로 된 고품격의 방명록에 붓을 준비해 놓은 곳도 있다.
방명록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격문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서를 하듯 이름만 쓰거나 ‘축하 합니다’를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영수 회화전’이나 ‘미당 서정주 송별기념 시의 밤’ 방명록에서 보듯 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인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더러는 시대를 추억하는 귀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방명록 문화가 새롭게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이 시대의 이야기나 번득이는 문구 하나라도 남겨놓으면 좋을 것 같다.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은 연락처만 남길 수 있도록 따로 방명록을 준비해놓으면 될 듯하다.
남농(南農) 허건(許楗) 선생이 생전에 젊은이들의 시화전에 들어 ‘유시청풍반향래(有時淸風伴香來)’ 라고 적어 놓은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향기를 동반한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으리라”는 뜻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넣어준 것이다.
최근 어느 전시장에서 본 방명록의 기록도 인상적이다. 한자로 ‘안복(眼福)’이라고 썼는데 “당신의 그림이 눈에 복이 되었다”다는 칭찬이다. 또 한 사람은 ‘로당당(露堂堂)’이라고 썼는데 나옹선사의 ‘일진불립로당당(一盡不立路堂堂)에서 따온 것이다.
“한 점의 티끌도 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다”는 뜻이다. 굳이 어려운 한문으로 쓸 필요도 없다. 형식적인 축하가 아니라 마음을 기록하자는 얘기다.
방명록은 핸드프린트나 푸트프린트와는 다르다. 이 시대의 유명인이나 원로작가들이 남긴 한 줄의 글이나 한 페이지의 삽화가 먼 훗날 ‘중요한 기록’ 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겼으며 한다.
◇ 지형원 <문화通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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